지난 블로그에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예로 노아의 경우를 들었다. 이번에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알아보자. 아브라함의 경우, 그의 가정적 환경이나 그가 살았던 주변 환경은 그야말로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는 부적합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구원받은 자의 반열에 설 수 있는 것도 100%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갈대아 우르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회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서 팔아서 생계를 꾸려가는 가정에서 자랐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는 정말 거리가 먼 그러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러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가 75세였다. 아브라함이 받은 명령이 창세기 12장 1절에 기록이 되어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또 그 명령을 이행하는 관계, 즉 하나님과 교통하는 관계에 있음을 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회복받았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하는 말씀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의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판단해주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판결을 받은 아브라함이 거기에 걸맞는 행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아브라함의 몫이다. 유감스럽게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에서 실패한다. 믿는다고 입으로는 얘기하는데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전연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연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내리셨다. 그 다음 차례는 무엇인가?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공이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하지 않고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결정을 해야한다. 이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나 되었다. 이 정도 나이이면 이제는 타향에 있다가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고향 땅에서 친척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며 뼈라도 고향땅에 묻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나이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것을 명령 받고 그 말씀대로 이행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하나님의 명령을 지상 최대의 것으로 알아서 시행할 수 있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소위 믿음장이라고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넘어온 공을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잘 처리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가도록 지시하신 땅이 바로 가나안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그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한 행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그의 중심에 확실히 모시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러한 일을 행동에 옮기는 일에도 부지런하였다.
하란땅에서부터 아브라함과 동행했던 조카 롯과 목축지 문제로 인하여 다툼이 일어났을 때에 그가 보여준 행동이 무엇이었는가? 자기 조카에게 절대적으로 양보하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을 대단히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다. 그 때 롯이 택한 요단 들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고 애굽땅과 같았다고 창세기 13장 10절에 기록이 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겠는가? 목축을 하는 사람이 물이 많고 목초지가 많은 땅이 왜 눈에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양보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결정을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는지는 창세기 13장 14절에서 17절에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그에게 주실 복을 다시 한 번더 확인해주셨다. 거기에 대한 화답으로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회복받은 자답게 하나님을 향한 전폭적인 믿음을 보이며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진다.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는 하면서 그 믿음의 증거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계속)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2011년 2월 20일 일요일
하나님의 형상 회복: 노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인생 여정을 살아가면서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만큼 잘 회복하느냐가 믿음 생활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표적인 성공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노아이다. 그의 삶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또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을 성심을 다해서 행하였다. 이 부분이 사실 대단히 중요하다. 믿는 자라면 믿음의 증거들을 삶 가운데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아의 경우는 창세기 6장 8절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아의 의가 회복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자라는 말이다. 의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시작되며 하나님 만이 회복시키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이고 또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의를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 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삶을 보면 비난 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 다운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죄가 가득한 그 당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피나는 그의 노력이 수반이 되었다는 말이다. 노아의 심령 가운데 손상되었던 거룩함이 많이 회복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지을 것을 명령하셨다. 그것도 산 꼭대기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약 120여 년이 걸린 엄청난 작업이었다.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며 주변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의 결과로 마침내 완성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노아의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역이 바로 하나님께로 향한 노아의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 물로부터 구원함을 받기 위해서 사용되어질 도구가 바로 방주이다. 이러한 방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것을 그대로 잘 이행하였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는 각종 동물들을 다 기억하였고 그들의 먹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기르는 지에 대한 지식도 구비하고 그것을 그대로 준비하고 이행한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시시때때로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일을 다 감당할 수가 있었겠는가?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였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세 며느리가 이 일에 순종한 것을 보면 노아는 그의 가족들을 사랑했으며 그의 가족들이 보기에도 바른 삶, 거룩한 삶,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족의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노아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원의 범주에 포함된 사람들과 짐승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대단히 귀한 분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고 말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다운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다운 삶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야 하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과의 사랑을 또한 실천해야 한다. 또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 즉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혀가야한다. 우리 가운데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회복하면 회복할 수록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22
노아의 경우는 창세기 6장 8절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아의 의가 회복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자라는 말이다. 의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시작되며 하나님 만이 회복시키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이고 또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의를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 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삶을 보면 비난 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 다운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죄가 가득한 그 당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피나는 그의 노력이 수반이 되었다는 말이다. 노아의 심령 가운데 손상되었던 거룩함이 많이 회복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지을 것을 명령하셨다. 그것도 산 꼭대기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약 120여 년이 걸린 엄청난 작업이었다.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며 주변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의 결과로 마침내 완성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노아의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역이 바로 하나님께로 향한 노아의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 물로부터 구원함을 받기 위해서 사용되어질 도구가 바로 방주이다. 이러한 방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것을 그대로 잘 이행하였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는 각종 동물들을 다 기억하였고 그들의 먹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기르는 지에 대한 지식도 구비하고 그것을 그대로 준비하고 이행한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시시때때로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일을 다 감당할 수가 있었겠는가?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였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세 며느리가 이 일에 순종한 것을 보면 노아는 그의 가족들을 사랑했으며 그의 가족들이 보기에도 바른 삶, 거룩한 삶,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족의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노아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원의 범주에 포함된 사람들과 짐승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대단히 귀한 분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고 말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다운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다운 삶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야 하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과의 사랑을 또한 실천해야 한다. 또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 즉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혀가야한다. 우리 가운데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회복하면 회복할 수록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22
2011년 2월 19일 토요일
집안 페인팅을 우리가 다 하다니!
2011년 2월 18일 금요일에 부부가 힘을 합해서 근 열흘에 걸쳐 집안 내부 페인팅 작업을 끝냈다. 대견하게 생각이 된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책을 보며 인터넷을 찾아 보면서 마무리지었다.
우리 집 내부는 천정은 Pop Corn으로 되어 있고 벽은 Knock Down식으로 처리되어 있고 Semi gloss로 되어 있다. 다 특수 처리가 되어 있어서 우리 같은 초보자들이 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았다. 벽이 Knock Down식이어서 표면이 오들도들하게(사투리인가?) 되어 있다.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페인트가 입히지 않는 부분이 생기고 또 표면적이 넓으니 당연히 페인트도 많이 소모가 된다. 그리고 약간 매끄럽고 광택이 나도록 되어 있으니 보기에는 좋으나 페인트가 잘 묻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처음 시도한 장소가 부엌인데 아마 서너번은 칠한 것 같다. 처음 페인트를 해놓고 보니 얼룩 덜룩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페인트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집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보니 몇 가지 것을 얘기해줬다. 그 분이 얘기한 것과 우리가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롤러는 양털로 만든 것을 사용할 것,
그리고 털을 포함해서 폭신폭신한 부분의 두께가 3/4인치가 되는 것을 쓸 것,
커텐, 부착물 등을 제거하고 못구멍, 파손된 부분 등을 떼우고(Patching) 표면을 매끄럽게(Sanding) 한다음 따뜻한 물에 세제를 풀어서 벽을 깨끗하게 닦아낼 것,
그 다음, 페인트가 닿으면 되지 않는 부분을 Taping을 할 것 등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한 사람은 큰 롤러를 가지고 W 또는 M자로 칠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작은 롤러와 붓을 가지고 큰 롤러가 닿지 않는 부분에 페인팅을 했다. 일차 페인팅이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두 번째 페인팅을 했다. 그랬더니 초보자들이 칠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작품이 나왔다.
근데 페인팅을 다하고 나서야 페인팅하기 전의 벽을 Before로 사용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이런데 익숙하지가 않아서 뭔가 빠뜨리는 것이 꽤있다.
아무튼 대단한 인내력을 가지고 페인팅 작업을 마무리했다.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니까 쉽게 얘기하면 이게 바로 기압의 일종이다. 군대에서 기압 주는 것이 무엇인가? 팔굽혀펴기, 쪼그려뛰기 등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시키는 것이 아닌가? 페인팅을 하기 위해서 롤러와 붓을 가지고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페인팅을 완료했다.
아래 사진이 Kitchen에 사용한 것인데 BlueGray색이면서 Semi Gloss로 되어 있다. 이 사진은 실제보다 더 진하게 보이지만 그런대로 나온 것같다.
Guest Bathroom에도 처음에는 위의 것과 같은 색으로 페인팅을 했는데 작은 공간이고 창문이 작은 것 하나가 있다보니 약간 어두운 기분이 든다면서 아내가 Creative Idea를 내서 Blue Gray에 흰색을 섞은 것으로 덧입혀서 페인팅을 했다. 아주 그럴듯하게 보인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도저히 근처에도 가지 않아서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Family Room과 Hall Way, 그리고 Guest Room은 같은 BlueGray이면서 Eggshell(광택이 별로 없는것)로 페인팅이 되어 있다.
Master Bathroom과 Utility Room은 연초록빛 색이면서 Semi Gloss로 페인팅 되어 있다.
Master Bedroom과 Living Room은 연초록빛 색에 Eggshell로 되어 있다.
집안 내부도 이렇게 새롭게 단장을 하고 나니까 참 깨끗하게 느껴지고 살 맛이 난다.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한 번 단장을 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계실 만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도 해본다. 그리고 신경질 한 번 내지 않고 일을 잘 끝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잘 맞추어준 아내에게도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우리 집 내부는 천정은 Pop Corn으로 되어 있고 벽은 Knock Down식으로 처리되어 있고 Semi gloss로 되어 있다. 다 특수 처리가 되어 있어서 우리 같은 초보자들이 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았다. 벽이 Knock Down식이어서 표면이 오들도들하게(사투리인가?) 되어 있다.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페인트가 입히지 않는 부분이 생기고 또 표면적이 넓으니 당연히 페인트도 많이 소모가 된다. 그리고 약간 매끄럽고 광택이 나도록 되어 있으니 보기에는 좋으나 페인트가 잘 묻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처음 시도한 장소가 부엌인데 아마 서너번은 칠한 것 같다. 처음 페인트를 해놓고 보니 얼룩 덜룩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페인트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집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보니 몇 가지 것을 얘기해줬다. 그 분이 얘기한 것과 우리가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롤러는 양털로 만든 것을 사용할 것,
그리고 털을 포함해서 폭신폭신한 부분의 두께가 3/4인치가 되는 것을 쓸 것,
커텐, 부착물 등을 제거하고 못구멍, 파손된 부분 등을 떼우고(Patching) 표면을 매끄럽게(Sanding) 한다음 따뜻한 물에 세제를 풀어서 벽을 깨끗하게 닦아낼 것,
그 다음, 페인트가 닿으면 되지 않는 부분을 Taping을 할 것 등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한 사람은 큰 롤러를 가지고 W 또는 M자로 칠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작은 롤러와 붓을 가지고 큰 롤러가 닿지 않는 부분에 페인팅을 했다. 일차 페인팅이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두 번째 페인팅을 했다. 그랬더니 초보자들이 칠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작품이 나왔다.
근데 페인팅을 다하고 나서야 페인팅하기 전의 벽을 Before로 사용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이런데 익숙하지가 않아서 뭔가 빠뜨리는 것이 꽤있다.
아무튼 대단한 인내력을 가지고 페인팅 작업을 마무리했다.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니까 쉽게 얘기하면 이게 바로 기압의 일종이다. 군대에서 기압 주는 것이 무엇인가? 팔굽혀펴기, 쪼그려뛰기 등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시키는 것이 아닌가? 페인팅을 하기 위해서 롤러와 붓을 가지고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페인팅을 완료했다.
아래 사진이 Kitchen에 사용한 것인데 BlueGray색이면서 Semi Gloss로 되어 있다. 이 사진은 실제보다 더 진하게 보이지만 그런대로 나온 것같다.
Guest Bathroom에도 처음에는 위의 것과 같은 색으로 페인팅을 했는데 작은 공간이고 창문이 작은 것 하나가 있다보니 약간 어두운 기분이 든다면서 아내가 Creative Idea를 내서 Blue Gray에 흰색을 섞은 것으로 덧입혀서 페인팅을 했다. 아주 그럴듯하게 보인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도저히 근처에도 가지 않아서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Family Room과 Hall Way, 그리고 Guest Room은 같은 BlueGray이면서 Eggshell(광택이 별로 없는것)로 페인팅이 되어 있다.
Master Bathroom과 Utility Room은 연초록빛 색이면서 Semi Gloss로 페인팅 되어 있다.
Master Bedroom과 Living Room은 연초록빛 색에 Eggshell로 되어 있다.
집안 내부도 이렇게 새롭게 단장을 하고 나니까 참 깨끗하게 느껴지고 살 맛이 난다.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한 번 단장을 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계실 만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도 해본다. 그리고 신경질 한 번 내지 않고 일을 잘 끝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잘 맞추어준 아내에게도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눈(Snow)
어릴 때는 눈이 오면 왜 그렇게 좋았을까? 추운 줄도 모르고 밖에 나가서 눈에 뒹굴고 떠들고 웃고 장난치고...
그러던 눈이였었는데 군대에서 제설작업하면서 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강원도 방산 일대에서 소대장을 하면서 겨울에 눈을 치우는 것이 중요한 일과중에 하나였다. 눈은 왜 그렇게 많이 오는지. 군사 작전 도로는 항상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가 되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눈이 오면 각 부대별로 제설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올때는 눈을 한참을 치우고 뒤돌아보면 제설 작업을 한 지역에 또 다시 눈에 하얗게 쌓여 있다. 하루 종일 제설 작업에 눈이 원망스럽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최근 미네소타에서 2년반 가까이 살면서 그곳 특유의 눈을 경험했다. 아주 추운 지역이고 또 눈도 많이 오는 지역이라 눈을 치우는 시스템은 잘 되어 있었다. 근데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변이 온통 회색빛이라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전부 히끄므레한 빛깔을 띄고 있다. 하늘도, 땅도, 호수도, 주변 건물도... 사람들의 얼굴조차도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일년의 반 가까이가 그러니 그것이 너무 싫어서 이곳을 떠나게 되면 햇볕이 많은 지역으로 가자고 해서 온 곳이 오래곤 남서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2011년 2월 17일 아침에 일어나니 뒷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일기 예보를 통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곳의 눈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야 말로 어쩌다 한 번 오는 눈이고 또 눈이 쌓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색깔이 있다. 뒷마당과 동네 뒷 산에 보니는 하얀 눈, 푸른 침엽수, 나무 밑에 파랗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잔디들,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을 곧추 세우고 있는 Blackberry들,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등 여전히 갖가지 색깔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각양 각색의 모양과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무책임으로 이 세상이 많이 손상이 되었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께서 처음 이 세상을 지었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그러던 눈이였었는데 군대에서 제설작업하면서 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강원도 방산 일대에서 소대장을 하면서 겨울에 눈을 치우는 것이 중요한 일과중에 하나였다. 눈은 왜 그렇게 많이 오는지. 군사 작전 도로는 항상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가 되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눈이 오면 각 부대별로 제설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올때는 눈을 한참을 치우고 뒤돌아보면 제설 작업을 한 지역에 또 다시 눈에 하얗게 쌓여 있다. 하루 종일 제설 작업에 눈이 원망스럽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최근 미네소타에서 2년반 가까이 살면서 그곳 특유의 눈을 경험했다. 아주 추운 지역이고 또 눈도 많이 오는 지역이라 눈을 치우는 시스템은 잘 되어 있었다. 근데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변이 온통 회색빛이라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전부 히끄므레한 빛깔을 띄고 있다. 하늘도, 땅도, 호수도, 주변 건물도... 사람들의 얼굴조차도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일년의 반 가까이가 그러니 그것이 너무 싫어서 이곳을 떠나게 되면 햇볕이 많은 지역으로 가자고 해서 온 곳이 오래곤 남서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2011년 2월 17일 아침에 일어나니 뒷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일기 예보를 통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곳의 눈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야 말로 어쩌다 한 번 오는 눈이고 또 눈이 쌓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색깔이 있다. 뒷마당과 동네 뒷 산에 보니는 하얀 눈, 푸른 침엽수, 나무 밑에 파랗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잔디들,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을 곧추 세우고 있는 Blackberry들,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등 여전히 갖가지 색깔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각양 각색의 모양과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무책임으로 이 세상이 많이 손상이 되었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께서 처음 이 세상을 지었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2011년 2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의 형상 회복: 결론
지금까지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사랑과 지식과 거룩함에 대해서 말했는데 여기서 결론을 맺을까 한다. 먼저 의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회복이 된다. 의가 회복이 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기도하며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사랑, 지식, 거룩함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가꾸어 나가야 할 것들이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회복되어 나간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100% 완전하게 회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회복은 우리의 육신을 벗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날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정말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면서까지 우리 가운데 있는 손상이 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려고 하시는 목적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신분이 사단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신부로 변화가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변화이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우리 스스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워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움을 받았으니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살아가는 몫은 우리의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사랑을 회복해가는 삶, 지식을 회복해가는 삶, 거룩함을 회복해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 예수님의 신부다운 자가 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엉터리 그리스도인이 아닌, 실제로 그리스도인다운, 하나님의 자녀다운, 예수님의 신부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서4:11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하나님의 형상 회복: 지식과 거룩함의 회복
그 다음 topic은 지식과 거룩함의 회복이다. 먼저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은 성경을 많이 읽고 배우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배울 때는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움을 받아야 한다. 세상적인 지식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지식이 회복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또한 바르게 인식할 수가 있다. 요즘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을 회복하기 위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한다. 얇은 지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하면서 떠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전부 자기의 생각 범위 안의 것들임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뜻도 자기의 뜻과 맞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아직 지식이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지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지식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는 기도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해야하고 동시에 성경을 많이 읽고 배워야 한다.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룩함이란 바른 삶, 성결한 삶을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6에서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들도 당연히 거룩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마찬 가지로 우리도 거룩할 것을 명령하신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삶의 모습은 짐승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고 거룩하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자라고 하면서 거짓말은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고 사기치고 매정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아무도 거룩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삶이 바로 거룩한 삶이다.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45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하나님의 형상 회복: 사랑의 회복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순간에 회복이 되지만 다른 형상들, 사랑, 지식, 거룩함 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심령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가 회복해나가야 된다.
먼저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두 가지 큰 계명을 주셨다. 계명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힘써 지켜야 될 주님의 명령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믿음과 노력(행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나의 주님(Lord)이시요 나의 그리스도(Christ)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심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라면 나는 그의 종(Servant)이 된다. 주종관계가 성립됨을 내 스스로가 고백한 것이 된다. 그 주종관계가 온전히 성립이 되려면 주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한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진정으로 믿는 증거를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는가? 그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지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노력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의 말씀을 삶 가운데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이다. 사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 같다.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정작 우리의 주님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연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공로는 눈곱 만큼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고난의 피로 우리가 의로운 자로 하나님으로부터 판정을 받았으면 우리의 그리스도시요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힘써 실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믿음이란 말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거기에 걸맞는 행위가 따라야만이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사랑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행위로 옮겨야 할 말씀은 마태복음 22:37 에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며 그리고 마태복음 22:39 말씀인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상대적인 우리의 본성과는 너무 동떨어진 말씀들이라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 말씀들을 가장 큰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의 종들인 우리가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거짓임이 들어난다. 우리 모두 열심히 노력하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한1서 3:23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