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0일 일요일

Wood Stove 설치

우리 집에 Wood Stove를 설치한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글을 올린다. 여기에 이사를 오면서 가능하면 모든 일을 우리 손으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 수입은 제한되어 있고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Wood Stove설치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여러모로 Research를 한 결과, 천정부터 지붕위까지 연결이 이미 되어있었던 연통은 직경이 7인치이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 산 Wood Stove연통 사이즈는 6인치이다. 그래서 우선 필요한 것이 7인치짜리 연통을 6인치 짜리 난로에 끼울 수 있는 Adaptor가 하나 필요하고, 7인치 직경 연통 3자짜리 두 개가 필요했다. 그러면 천정에서 난로 바로위까지 될 길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천정에서 난로 연통 입구까지 길이보다 연통 길이가 더 길다는 것이다. 천정 안으로도 2인치 정도가 들어가야 되고 난로 안으로도 2인치 정도가 들어가야 되니까 당연한 계산이다. 문제는 그것을 설치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난로 자체도 무게가 350파운드가 되니 가볍게 움직여 볼 방법도 없고 연통도 강철 재질로 되어 있어서 조금도 휘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의 방침을 바꿔서 전문 설치 업자를 부르기로 했다. Mike라는 분이 와서 난로를 설치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설치하기로 되어 있던 날 갑자가 연락이 왔다.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우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을 기다리다가 다른 연락이 없어서 내가 하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
막상 하려고 보니까 천정에는 Male 부분이 필요하고 난로에도 Male부분이 필요하다. 난로부분에는 7인치-6인치 Male Adaptor를 끼우고 그 Adaptor에 3자 길이의 7인치 연통 Male을 끼웠다. 천정에도 7인치 짜리 Male을 끼우고 나니 가운데서 Female부분 두 개가 서로 만나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7인치짜리 Female 두 개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Adaptor를 사왔다. 제대로 할 줄 모르니 몸이 고생하는거지 뭐.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연통길이가 실제 공간보다 더 길어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7인치 Adaptor부분에 양쪽 연통을 최대한 끼워 넣어서 길이를 짧게 만든 다음, 난리를 쳐서 연통을 겨우 연결했다. 그리곤 그 연결 부분을 조금씩 느슨하게 하는 궁여지책으로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불을 피워보면서 연기가 혹시 새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새로 산 난로와 연통이어서 처음 며칠 동안 페인트 타는 냄새가 조금 났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Family Room에 온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잘 감당하고 있다. 설치가 완료된 난로를 보시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8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Blackberry/Waste와의 전쟁

Blackberry의 생명력은 놀랍다. 몇 주전에 뒷마당에 있는 Blackberry의 밑부분을 전지가위와 톱으로 대부분 잘랐다. 근데 그 때 바로 태워 버렸어야 했는데 나중에 하리라 생각을 하고 그냥 두었다. 그랬더니 잘린 부분이든 줄기 부분이든 땅과 가까이 있는 것들이 다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최근에 발견이 되었다.
겨울 내내 강물이 우리집 뒷 마당에 가져다 준 쓰레기도 만만치 않아서 오늘, 2011년 1월28일 Blackberry와 쓰레기 소각 작업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 먼저 뒷 마당 한 귀퉁이에 장작불을 피우고 그 위에 Blackberry 들을 태웠다. 생각보다 불에는 매우 약했다. 불에 얹자 마자 사정없이 타들어가는 Blackberry들. 나의 다리와 손에 여러 군데 상처를 낸 녀석들을 엄청나게 태워없앴다. 오후 2시경에 시작했는데 5시경에 끝났다. 근데 물에 떠내려온 쓰레기는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그런지 잘 타지는 않고 날씨는 어두워져가고 해서 Wheelbarrow 약 3~4대분은 태우지 못했다. 천상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되겠다.
오랜 만에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먹었으니 말이다. 물소리를 들어가면서 뒷 마당을 정리를 하기 위해서 땀을 흘리니 마음도 한결 개운한 것같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부터 시작해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는 데 익숙한 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불이 어느정도 다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집에 들어오니 저녁 7시 30분이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한 말, "여보 나 퇴근했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편 8:1

하나님 형상따라 지음 받은 자(3)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공의의 하나님, 또는 거룩하신 하나님하면서 하나님 앞에 여러 수식어를 사용할 때가 있다. 여기서 의(Righteousness)와 거룩함(Holiness) 등은 하나님의 내적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완전 무결하신 분이시고 죄가 전연 함께 하지 못하시는 성결한 분이시다는 우리의 고백이 그 가운데 담겨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지고 계시는 의와 거룩함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셨다. 그 중요한 이유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 가운데 있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을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따라 우리 인생을 지으셨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을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잠깐 드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에스겔서 28장 12절부터 17절까지 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처음 지음 받은 인간은 완전한 모델있으며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고 우리 인간이 지음을 받던 날에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으며, 기름 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산에 거하였고 모든 길에 완전했으며 아름답고 영화로운 자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4

2011년 1월 27일 목요일

Sewing Storage Room

첫 작품으로 Sewing Machine Table을 만들었었는데 이번에는 Sewing Storage Room을 만들었다. 작은 Closet을 Sewing에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두기 위한 아내 전용 공간이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써서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먼저 천정이 Popcorn ceiling으로 되어 있어서 그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상당히 성가셨다.

Before

이러한 Popcorn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루도 길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봉지를 달 수 있는 그럴듯하게 생긴 Scraper를 Lowe's에서 사왔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Blade가 너무 Flexible해서 쓰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은 작지만 Blade가 빳빳한 것으로 다 긁어냈다. 직접 해보니 어느 정도의 물을 뿌리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았다. 너무 물을 많이 뿌리니 녹아서 밑으로 떨어지고, 물을 적게 뿌리면 긁어 내는데 힘이 들고 먼지가 많이 생겼다.

After

아무튼 난리를 쳐서 겨우 다 긁어 내고 새로 천정과 벽면에 페인팅을 하고 1X6 6ft 짜리 네 개를 사와서 반으로 잘라서 각 선반에 3ft짜리 두 개씩 설치를 했다. 설치하기 전에 아내가 Sanding을 하고 Conditioner를 칠했다. 이런 종류의 선반을 만드는 것도 처음해보는 일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일이고 아내를 위한 일이라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아내왈, Good Job!



잠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하나님 형상따라 지음 받은 자(2)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그의 전지 전능하심의 한 표현이다. 온 우주 만물이 그가 지으신 질서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만 하더라도 자전과 공전이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 분의 이러한 지식을 따라 우리 인간도 지음을 받았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손상이 된 우리의 지식이 새롭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이다.
아담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았으며, 각양 각색의 동물들을 알고 또 그것들의 이름을 지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지식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하나인 지식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 이러한 지식이 많이 손상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잔재는 아직 여러 부분에 남아있다. 가인이 성을 쌏는 지혜, 그의 후예들이 수금과 통소를 다루는 솜씨,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축성술등에서 볼 수 있고 요즘 시대에는 컴퓨터, 비행기, 우주선 등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손상된 지식이 회복이 되면 우리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 될까?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러한 지식을 회복해서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 인류를 위해서 건설적으로 아름답게 사용했으면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세기 2:19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하나님 형상따라 지음 받은 자 (1)

우리 인간의 내적 속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는데 먼저 그 형상이 무엇일까? 물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 속성을 말하고 있다. 내가 성경을 찾아본 결과 성경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속성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사랑과 지식과 의와 거룩함 등이다.
첫째 소개할 속성은 사랑인데,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고 있는 바처럼 사랑이시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장 8절과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은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 자비, 인자, 긍휼, 용서, 오래 참으심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클라이맥스는 요한복음 3장16절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신 것, 절대적이고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따라 우리 인간들이 지음을 받았다. 사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소위 말하는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과도 완벽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면 이러한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날이 갈수록 사랑은 더욱 메말라지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사랑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 미움, 시기, 질투, 이기심 등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가슴에 아직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매우 제한적이기도 하고 선별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배우자나 부모나 친구나 자식이나 이웃을 뜨겁게 아끼며 사랑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고귀한 사랑의 흔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크게 칭찬하시고 계신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 4절~7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의 수준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주님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두 가지 큰 계명이 있다. 그 첫째 계명은 마태복음 22:37에 기록이 되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마태복음 22:39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계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힘써 지키며 살아가야 할 주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Garden만들기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졌고 또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홁과는 늘 친밀함을 느낀다. 어릴 때도 흙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을 할머니가 보실 때마다 흙에 손도 대지 말라고 호통을 치셨다. 너는 농사를 지으면 안돼, 판검사가 되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농사일이 너무 힘이 드셔서 손자는 더 이상 농사를 짓는 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시골에서 자랐으면서도 흙과는 항상 거리가 있었고 농사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게 많았다.
그러던 내가 작년부터 집에서 채소를 가꾸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부분은 아내가 하고 나는 주로 힘을 쓰는 부분들, 땅을 판다든지 물을 준다든지 하는 일들을 감당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이곳에 이사를 오면서 우리 밭을 한 번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가로 약 7미터, 세로 약 1.2미터 넓이다. 원래 있던 잔디를 떼어내고 흙을 약 30~40cm 깊이로 일군 다음에 똥거름을 넣어서 섞고 고르게 평탄 작업을 한다음, 그 위에다가 Top Soil을 까는 작업이었다.
작업 가운데 잔디를 떼어 내어서 그것을 Shop뒤에 있는 공간까지 Wheelbarrow로 옮겨서 심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 흙이 붙어 있는 잔디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던 난생 처음으로 조그마한 밭을 아내와 둘이서 만들었다.
물 가에 있는 땅이라 모래 성분이 많아서 무우, 감자, 고구마, 등 뿌리 식물을 심을 계획이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River Loop Trail

우리가 즐겨 다니는 산책 코스 이름이 River Loop Trail이다. Gold Hill Sports Park안에 있는 산책로인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걷는 것을 즐긴다. Rogue River를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야말로 산책로만 만들어져 있고 나머지는 자연그대로이다. 그것이 더 좋아서 즐겨 찾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산책로의 입구이다. 두 명이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작은 자갈들을 깔아놓았다. 요즘은 대부분이 포장이 된 길을 걸을 때가 많이 있는데 여기는 자갈길을 걸을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강을 두고 걷게 된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다보면 좌우측에 여러 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우리들에게 인사를 한다. 제일 처음 만나는 녀석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여러 겹으로 되어 있으면서 북쪽을 연하는 면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이끼의 색깔이 참 이쁜데 사진사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사진으로 보니까 그 연한 푸르름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이 바위를 지나면 길 오른쪽은 강이고 왼쪽은 특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 가운데 몇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이런 시골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미녀 등장!!!
이런 미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즐거움이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면 꼭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Blackberry들이다. 켈리포니아 북쪽에서도 많이 보이던데 오래곤, 와싱턴에 이르기까지 즐비하게 널려있다. 물론 우리 집 뒷 마당에도 있다.
Blackberry철이 되면 그것을 따먹는 재미도 꽤있을 것 같다. 어느덧 반환점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물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도도하게 그리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보면 여기 사람들이 왜 Mighty Rogue River라는 표현을 쓰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깊도다." 찬송가 78장 1절.

2011년 1월 19일 수요일

지난 밤에 게가 출산을

어제 잡아 온 게를 Garage에 넣어 두었다가 아침에 보니 글쌔 게가 지난 밤 사이에 출산을 했다. 몇 마리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얼른 세어보니 네 다섯 마리는 되어 보인다.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서 아내를 불러서 함께 보는데, 아니 조개 입에 조그마한 새끼 게의 다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게가 그곳을 숨을 장소로 생각해서 들어갔는지, 아니면 조개가 아침 식사로 잡아 먹고 있는 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던 젓가락을 가지고 한 손으로는 조개를 벌리고 게 새끼 구출 작전을 시도했는데 아쉽게도 실패를 했다. 겨우 꺼내기는 했는데 이미 게의 반 쯤은 절단이 되고 없었다. 그래서 새끼들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 일을 시작했다. 원채 작아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네 마리를 옮겨 담는데 성공을 했다. 그들을 어찌해야 될꼬... 내일 다시 Coos Bay에가서 놓아줘야 될려나. 아니면 빵게조리듯이 조려서 먹어야 되나...
빵게하니까 장인 어른이 생각이 난다. 장인 성함이 대기(대게, 큰 게의 사투리)라서 어른들이 그 분의 자녀들을 빵끼(빵게의 사투리)라고 불렀다든데. 내 아내도 빵끼중의 하나였다.
간 밤에 새끼를 출산한 게의 늠름한 모습. 참고적으로 빨간 게는 사이즈나 마릿 수에 제한이 없다고 하는구나.

빨간 어미 게가 낳은 새끼 중 최소한 한 마리를 아침 식사로 드신 조개.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2011년 1월 18일 화요일

Coos Bay 게, 조개잡이

어제는 그야말로 봄 냄새가 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즐겨 찾는 강 가 Trail에 갔었는데 점점 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새 잎들을 내어 뿜을 것만 같은 기세들로 나무들도 한껏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봄 기운에 취해서 물 가에서 두 시간 넘게 놀았던 것 같다. 내일은 바닷가에 놀러가자. 그래서 게도 잡고 조개도 잡자고...
오늘 Coos Bay에 다녀왔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는데만 3시간은 더 걸렸다. 막연하게 1시간 반이면 바닷가에까지 가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하다. Coos Bay는 우리집에서 북서쪽 방향이니까 I-5를 타고 약 80마일 북쪽으로 가서 다시 서쪽으로 80마일을 달려서 도착한 곳인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정오경으로 그런데로 날씨가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바람이 불고 스산해지면서 오후 3시가 지나서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닷가라서 그런가? 어제와는 분위기가 많이 틀렸다. 그렇지만 난생 처음해보는 게잡이와 조개잡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조개 껍질이 얇아서 쉽게 깨어졌다는 것, 아무튼 오늘 잡은 것들을 블로그에 올려본다. 근데 사진을 찍어서 올려보니 아주 아담하네. 참고적으로 게는 몸통 직경이 6인치 정도이고 조개는 큰 것이 직경 3인치 정도이다. 맨날 가재, 게, 조개 이런 것들만 올려서 속이 느끼할 지 몰라서 아내가 기른 숙주 나물도 곁들여 본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29

2011년 1월 17일 월요일

민물 가재

오늘 물가에서 민물 가재들을 잡았다. 잡을 목적으로 물가에 간 것은 아닌데 물가를 다니다보니 가재들이 눈에 보여서 몇 마리 잡았다. 어릴 적 물가에서 가재를 잡던 생각들이 떠올라 괜히 즐거웠다. 근데 한국에서 잡았던 가재보다는 여기 가재들이 껍질이 훨씬 단단한 것 같으다. 한국에서는 끓는 물에 튀겨서 그냥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 것은 껍질이 단단해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고소한 것이 맛은 별로 틀리지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3)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목적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 첫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시기 위함이고 두번째 목적은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신 우리 인간을 위함이다.
창세기 1장에 언급된 창조의 순서를 보면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둘째 날에는 하늘을 지으시고 셋째 날에는땅과 바다와 땅에 사는 식물들을 지으시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다섯 째 날에는 물고기와 땅에 사는 동물들과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여섯 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는데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7절에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고 기록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내용을 가만히 보면, 빛과 하늘과 땅과 바다와 식물과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동물들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다. 우리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먼저 다 만드신 다음에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창조 과정에서 우리 인간과 관련된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다른 피조물과는 틀린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 (창 1:26~27), 둘째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를 사람이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것 (창 1:26, 28), 셋째는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다 (창 2:7)는 점이다.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점은,
첫째,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물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인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내적 속성을 말씀하고 있다. 사랑과 지식과 의와 거룩함의 속성을 우리 인간에게도 주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영이신데 우리 인간도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신부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영원토록 교제하며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 다음에 좀 더 언급하도록 하겠다.
둘째는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1:28에 보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자의 위치에 세움을 받은 것이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이다. 이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움을 받은 것이 바로 우리임을 알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다윗왕은 감격에 겨워 시편 8:6~9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하고 말이다.
셋째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이 부분은 창세기 2:19에 보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도 흙으로 지으셨음) 특별히 사람의 경우에는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내용이 창세기 2:7에 기록이 되어 있다. 생기는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을 말하며 이것은 영(spirit)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독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영원하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수명을 갖고 있지만 영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하나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공통 영역이며, 연결 고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감동이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어쩌다 이 세상에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교제의 대상,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지음을 받지 않았으면 육신을 입은 우리 사람이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겠는가? 이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우리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것은 바로 나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시기 위한 것이고, 그가 지으신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통치자로 나를 세우셨고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교제의 대상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나를 지으시고 나에게 하나님과의 공통영역인 영을 허락하셔서 이 영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허락하셨다. 이렇게 보면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하고 특별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나 자신을 귀하고 특별하게 여기며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만 이렇게 하나님께 특별한가? 나라는 존재가 특별하듯이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든 인류도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배우자, 가족, 친구, 이웃,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이며 귀한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귀하게 여기며 특별하게 여기며 살아가야겠다. 이것이 창조주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011년 1월 16일 일요일

나는 누구인가? (2)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먼저 내 이름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내의 남편이고 내 자녀들의 아버지이고 등등 자기 중심에서 출발해서 가족으로, 사회적 신분으로, 교회의 직분으로 얘기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이러한 것 자체가 삶의 동기를 유발하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했던 군대 생활을 27년 반이나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다. 내 이름이 바뀔 수도 있고, 배우자와의 관계도 변할 수 있고 사회적 신분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성경 역대기에 보면 새로이 왕이 되는 분을 소개할 때 그의 어머니가 누구이고 그 어머니는 누구의 딸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왕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이미 정해져있으니까 이러한 방법은 그래도 훨씬 가변성이 적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방법도 내가 지금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보다 절대적인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 인간의 것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지만 성경은 절대적이고 불변의 진리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고 나 자신도 한 점의 의혹이 없이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정립하기 위해서 성경을 열기로 작정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는 창세기가 좋을 것같다. 특히 창세기 앞 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시는 내용이 기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에 의해서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하는 문제를 이해하고 나면 사실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겠는가? 큰 기대를 가지고 창세기를 열어본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5~16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나는 누구인가? (1)

“나는 누구인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어디로 향하여 나는 가고 있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는 사춘기 시절에 심각하게 고민을 했음직 한 주제인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 왜 그렇게 바빴는지.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가기 싫은 학교도 갔었어야 했고, 하기 싫었던 공부도 했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열심히 하고 싶었던 일들은 부모님들이 반대하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부모님들 몰래 몰래 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5, 6학년때는 만화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좋은지, 나중에는 학교에 가는 대신에 만화집으로 바로 출근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6학년을 재수하고 겨우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그 때는 또 영화 구경하는 것과 권투가 좋았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2학기부터는 사복을 입고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써 붙여 놓은 영화 구경가면서 스릴을 느끼고, 권투 선수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입술이 터지고 눈 두덩이가 시퍼렇게 멍드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겼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1학년까지는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끔씩 BEST 10에 들기도 했는데 2학년 올라가서 어느 날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오고 부터는 등산이 너무 좋아서 학교에 결석을 하면서까지 등산을 다니는 바람에 출석 일수가 모자라서 졸업을 못할 뻔 했다. 다행히 특차로 치룬 사관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는 바람에 고등학교에서 졸업을 인정해주었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 가기 전에는 그 곳에 가면 맨날 군사훈련이나 받는 줄 알고 들어 갔는데, 입학하고 보니 일반 대학교 처럼 이수해야 할 과목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은 실망도 하고 후회도 했지만 때는 늦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창 신이 나서 군대 생활을 할 때는 장미빛 청사진이 눈 앞에 전개가 되고 또 제대하고 나서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담임할 때는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실 상급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까 갑자기 너무나 조용해지면서 새삼스럽게 이러한 문제가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정립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문제, 가까이로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우리가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 상의 각종 인간들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고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며, 또 나의 입으로 창조주로, 나의 삶의 주관자로, 구원자로 고백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2011년 1월 14일 금요일

연어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해보았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그 분야에서 이런 저런 일들, 상당히 많이 알고 또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 다른 것들도 자동적으로 그 정도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막연히 지레짐작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 1월6일에 우리 집 뒤편 강에서 연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것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연어를 낚시로 잡았다는 말이다. Fillet을 뜨고 나서, 이것도 처음해보는 일이어서 다 해놓고 보니 꼭 누더기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머지 부분에 살이 원채 많아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익히 아는게 매운탕이라 매운탕을 끓여 먹었는데 맛이 너무 너무 좋았어. 사실 멀리있는 자녀들이 생각이 났다. 함께 먹었으면 좋았을 껄~. 난생 처음 잡은 귀한 것이라 살코기는 냉동해뒀다가 아내 생일날 저녁에 연어 초밥과 싸시미를 해먹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 원채 산골에서 자라서 회 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제는 특별한 날이라 함께 즐겼다.
얘들아 눈으로 구경이나 해라.
근데 사진을 올려놓고 보니 색깔이 좀 틀리네? 노란색이 많네?  색깔이 그래서그렇게 맛이 있어보이지 않지?
실제는 핑크빛이었는데 그리고 맛이 기가 막혔어!

생선회가 되기 전의 늠름한 모습
난생 처음 잡은 연어

2011년 1월 13일 목요일

아내 생일 선물

부부란 함께 살아가다보면 서로 닮아간다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선물에 대한 개념도 이제 서로 닮아져 가나보다.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선물할 일이 있을 때마다 약간씩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선물에 대한 개념이 서로 틀렸기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 선물이란 것이 어릴 때는 생일이나 명절때 받는 옷이나 신발, 책가방 등이었고 그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받는 것을 선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물을 받을 일이 있으면 나는 뭐가 필요하다고 미리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가지고 있는 선물에 대한 개념은 나의 것과는 틀리다. 아내는 이러한 것들, 즉 옷, 신발, 부엌 용품 등은 생활 필수품으로 생각해서 선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Surprise를 좋아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짱~하고 꽃이나 목걸이나 반지 등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받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선물을 해야 될 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때로는 아들이나 딸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아내에게 은근히 물어보기도 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면 아내의 답변은, 결혼하기 전에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결혼하기 전, 어느 날 반지를 선물로 가져왔는데 사이즈도 자기 손가락에 맞고 참 맘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양반이 어떻게 내 손가락 사이즈를 알고, 이렇게 예쁜 반지를 가져 왔을까 하면서 놀랐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깜짝 놀라게 해주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잘 하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계속 뭘 선물해줄까 뭘 선물해줄까 자꾸 묻는데 본인도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글쎄 이번 생일에는 나에게 미리 이런 것들을 (사진에 나온 것들) 생일 선물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는 바람에 감격(?)했다. 아마도 아내는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모양이다. 살다보면 이런 좋은 때도 있는 모양이다. 갈수록 좋아지는 것만 남았다. 아~신난다.
아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2011년 1월 12일 수요일

과일나무

오늘 Lowe's에 가서 8그루의 과일 나무를 사왔다. 평소 우리가 좋아 했던 것,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Pear 두 그루, Fig tree 한 그루,  Apple 두 그루, Cherry 한 그루, Plum 한 그루, Peach 한 그루 등이다. 두 그루 산 것은 수정 문제 때문이다.
이제부터 고려해야 할 것은 어디에 무슨 나무를 심느냐 하는 것이다.

오! Chul과 Jae가 아쉽구나. Digging을 어찌할꼬...
Manual 담당이었던 Bom도 아쉽고...

2012년부터는 우리가 직접 심고 가꾼 과일을 즐길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땅을 팔거야!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2010년 마지막 날에 아내와 함께 2011년을 어떻게 맞을까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블로그 얘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다가 갑자기 모든 일을 놓아 버리면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블로그를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 글솜씨는 별로 없지만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올리고 또 우리는 기독교 신자니까 매일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보다 더 열심히 하면서 서로 나눈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우리의 자녀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망설여지기도 해서 미루다가 1월10일 월요일 저녁에서야 겨우 글을 한 편 올렸다. 장교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입은 그런대로 발달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실제 글을 쓰려니 쉽게 되지 않아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첫 작품: Sewing Machine Table

결혼 생활이 이제 32년이 넘었다. 뒤돌아 보면 줄곧 아내의 내조를 받아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다른 남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달 생활비를 벌어서 아내에게 가져다 준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을 해 준 것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직장 생활에서도 물러나고 애들도 다 커서 우리 품을 떠나고 그야말로 주위가 갑자기 너무 조용해진 것 같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도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를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Sewing Machine을 놓을 테이블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내가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졸라서 시작한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 만 해도 아내가 Sewing Machine을 잘 다룬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다. 바짓 가랭이 하나 줄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니 말이다. 아내 말로는 수선이 더 어렵고 그것보다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었다는 변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그것은 딸 결혼식때 딸의 Wedding dress를 아내가 만든 것이다. 나도 놀라고 딸도 놀라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놀랐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내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접적인 수혜자였던 딸이 아내에게 재능을 살리고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아내의 성격이 적극적이지도 않고 또 당시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은퇴를 하고서야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사위가 Sewing machine을 한 대 Thanksgiving때 선물을 했다. 아마 아내에게 시동을 걸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위가 아내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그런지 너무 기능이 많은 것을 사줘서 아내가 그것을 연구하느라 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집에 있는 넓은 식탁도 마다하고 꽤 그럴듯해보이는 책상도 마다하고 나에게 테이블을 하나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테이블을 만들어보았다. 아내로부터 몇 번 불합격을 받아가면서, 그렇지만 아내가 쓸 테이블이라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원채 기본기가 없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모양도 그렇고 그렇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면서 이 글을 올린다.